한약재의 자가규격(자가포장)제를 오는 10월1일부터 폐지키로 한 정부의 조치를 놓고 생산자단체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다.
한약재 자가규격제는 농업인이 자체 생산한 한약재는 품질검사 없이 단순 가공ㆍ포장해 판매를 허용키로 한 제도로 지난 1996년부터 시행돼 왔다. 그러나 일부 판매업소들이 품질검사를 받지 않고도 가공ㆍ포장ㆍ판매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월 자가규격제를 2011년 9월30일까지만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해 고시했다.
자가규격제가 폐지되면 한약재 가공ㆍ포장은 약사법에 의해 당국의 관리ㆍ감독을 받게 되는 제조업체(제약회사)만 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한국생약협회와 한국한약도매협회ㆍ전국약초생산농민들은 자가규격제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13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궐기대회를 여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가규격제가 허용돼 그동안 한약재 생산농가들은 도매회사ㆍ제약회사로 판매처가 다양했었는데, 앞으로는 제약회사 한곳으로 판로가 축소돼 결국 생산기반도 붕괴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비대위 공동대표인 엄경섭 한국생약협회장은 “자가규격제 폐지를 시행하기 앞서 국산 한약재 직거래사업, 계약재배 활성화, 재배농민의 제조업 진입요건 완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해구 전국약초생산농민 대표도 “산지수집상과 도매회사는 1,500개가 넘는데, 국산한약재 제조회사는 30곳에 불과해 농가들은 구매능력이 없는 제조회사에만 팔아야 한다”며 “이는 농민의 한약재 판로를 제한해 생산기반을 붕괴시키고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 결국 수입 한약재만 유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7월 말까지 보건복지부 앞에서의 집회 신고를 경찰당국에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대다수 약용작물 생산자단체들은 정부의 조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약용작물 생산자단체의 연대조직인 우리한약재살리기운동본부 권희대 사무총장은 “자가규격제도로 인해 도매업자가 농민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왜곡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자가규격제 폐지로 그동안 도매업소에서 있었던 원산지둔갑 행위만 차단해도 국산한약재 유통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30곳의 약용작물 주산지 농협의 조합장들로 구성된 약용작물전국협의회도 자가규격제도를 폐지키로 한 정부조치를 환영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협의회는 그 이유로 ▲생산농가는 자가규격제를 이용하지 않고 있으며 ▲자가규격제가 폐지된다면 원산지 위ㆍ변조 행위 감소는 물론 한약 규격품의 품질개선이 기대되고 ▲도매업소와 제조업소를 겸하는 업체가 많아 한약재 유통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자가규격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더 이상 수입품을 국산과 혼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한약재 구매 및 제조에 대한 매출규모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광동 기자 kimgd@nongmin.com